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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각국 정상들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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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토 무솔리니]] == 스탈린과 무솔리니의 관계는 상당히 복잡한 편이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반공주의를 원칙으로 삼았기에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마찬가지로 소련과는 물과 기름같은 존재였으나, 사실 무솔리니는 1924년 2월 7일에 소련과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방국가 지도자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국교를 튼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근본적으로 미국식 자본주의에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소련과 통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공황 시기에도 서방의 자본주의 사회가 엄청난 타격을 입은 반면에 소련은 여전히 급속한 경제성장을 기록했던 점도 무솔리니가 소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소련 측 또한 언론을 동원해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무솔리니 정권을 지속적으로 공격했으나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스탈린과 무솔리니의 관계는 1930년대에 이르러 크게 개선되었는데, 1933년 5월 6일에는 서로 경제협정을 맺어 소련은 이탈리아에 석탄과 석유 등의 원자재를, 이탈리아는 소련에 항공기 · 자동차 · 선박 등을 판매했다. 그해 9월 2일에는 이탈리아-소련 간의 불가침 조약까지 채결되었다. 이 시기에 소련의 주이탈리아 대사였던 블라디미르 포템킨이 이탈리아의 외무차관 풀비오 소비치에게 초대장을 보내 이탈리아의 육군 · 해군 대표단이 2주 동안 소련을 방문하는가하면,[* 공군 대표단은 [[이탈로 발보]]의 반대 때문에 소련에 파견되지 못했다.] 소련의 전함 3척이 이탈리아 나폴리를 방문하는 등 양국간에 상당한 우호가 다져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이후 소련의 뒷통수를 수차례 때렸는데, [[스페인 내전]]에 개입하여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위해 의용군을 가장한 사단 단위의 병력을 파견하는 등 노골적으로 지원을 퍼주어 스탈린의 분노를 산 것이 대표적이다.[* 사실 스탈린과 히틀러 마저도 스페인 내전에는 간접적으로만 개입했으나, 무솔리니는 직접적적으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사정이 썩 좋지 못했음에도 무솔리니는 스페인 파병을 억지로 밀어붙였다.] 무솔리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방공 협정]]에도 가입하였으며, [[겨울전쟁]] 당시에는 [[핀란드]]를 위해 전투기와 소총을 지원하기도 했다. 결국 스탈린과 무솔리니의 관계는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할 당시 무솔리니가 병력을 보내 독일군을 지원하면서 완전히 파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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